누에이야기 (9) -- 누에나방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



내가 일요일마다 즐겨보는 미드 'CSI'에 나오는
맥 테일러 반장이 이 장면을 봤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음... 혈흔의 모양으로 봐서...
고속으로 비산된 것임에 틀림없군 !
오른쪽 아래에서 혈액이 튀었고 각도는 10도 미만일거야..." ^^

진짜 CSI에서나 나올법한 이 것의 정체는
혈흔이 아니고 누에나방의 배설물이다.

누에 나방은 번데기에서 나와..
알칼리성 액체를 입으로 뿜어 고치에 구멍을 뚫고 나온다.
고치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배설물을 한차례 뿜어낸다.

고치를 벗겨낸 상태로 번데기를 관찰하던 중이라
책상위에 저런 모양을 만들어냈는데..
실로 엄청나게 힘차게 뿜어낸 것 같다.



원래는 고치에서 나오면서 바로 뿜어내기 때문에
고치의 입구가 저렇게 변하고 만다.

번데기 안에서 나방으로 변하는 동안에도
몸 속에서는 대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 대사의 결과물인 노폐물이 체내에 축적되어 있다가
번데기에서 나오자 마자 한꺼번에 배출하는 것이다.

병아리도 알껍질을 깨고 나오면 먹은 것도 없는데 얼마 안 있어 태변을 눈다.
옛날에 호랑나비도 키워 봤는데
호랑나비도 번데기 안에 배설물을 누고 나오지만
누에보다 양도 적고 강력하지도 못하다.

누에나방의 이 배설물은 
누에나방이 세상에 나와 눈 처음이자 마지막 배설물이다.

왜냐하면, 누에나방은 입이 퇴화되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누에나방의 모습이다.

털이 북실 북실한게...
제대로 나방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날개가 작고 완전하지 못해 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분답게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몇 날 동안 살다가...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나방으로서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이
배설물 한 방이 전부라니 ...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뽕잎을 먹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1,500 미터나 되는 실을 뽑으며 살았는지...

뭔가 좀 허무하다. 정말... 



누에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여기서 마칩니다.
그동안 지루한 누에이야기를 끝까지 봐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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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격물치지 | 2009/09/12 21:16 | ┗ 곤충류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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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haind at 2009/09/12 22:33
곤충이란 게 원래 유충 = 먹는 기계 / 성충 = 생식기계 하는 식인데 누에나방이나 하루살이 같은 경우는 그게 좀 극대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Commented by 격물치지 at 2009/09/14 23:18
ㅎㅎ 그런가요.. ^^
그래도 누에는 좀...
Commented by hart58 at 2009/10/23 17:05
암수짝짓기와 알낳기까지 진행되었다면 완벽한 cycle이 되었을 텐데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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